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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of the Fucking World 


빌어먹을 세상따위



내가 꿈꾸던 로만 홀리데이:

     Halsey의 Roman Holiday라는 곡이 있다. 몇 년전 많이 좋아했던 곡이다. 대충 요약하자면 밤새 차를 몰고 누군가도망치는 류의 내용인데, 이 쇼를 보며 이 곡 생각이 가장 많이 났던것 같다. 지옥같은 세상속에 서로가 구원이되는 이야기가 그땐 그렇게 낭만적일 수 가 없었다. 어떤 속박으로부터의 탈출은 전형적인 틴에이지 트롭이라고 생각이 들긴 하나 의외로 이렇게 극단적으로 이 엑소더스를 그린 작품(더불어 꼭 필요한 ~영상미와 완벽한 음악 셀렉션~ 까지)이 많이 없기 때문에 사실 스토리나 캐릭터가 심도깊지 않아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 쇼는 충분히 토론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나의 예상을 깬 점과 그렇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또 결과적으로 우리(틴에이져)들은 왜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 온갖 범죄의 늪에 빠진 제임스와 알리사가 어째서 결국은 우리의 동정심과 사랑을 사게 되는지.


~여기서부턴 스포일러 투성이랍니다 쇼 내용 거의 다 나와요 ~



제임스와 알리사: 

      이 쇼는 결국 제임스를 위한 이야기이다. 모든건 결국 제임스의 삶이고 어떻게 그가 변화했는지를 알려준다. 제임스는 내내 과거형으로 말하다 마지막 장면에 말한다. 열여덟이 되는순간,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를 깨달았다고. 제목처럼, 정말 그의 세상이 끝을 맞는 순간이다. 제임스는 이미 알고있었다. 자신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란것을. 그는 알리사를 만나며 느끼지 못했고 느끼고싶지 않았던 감정들을 차례차례 경험하며, 뼈아픈 성장을 한다. 죽음에 대한, 그리고 살인에 대한 집착이 거짓임을 알았을때는 이미 사람을 죽인 후였다.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걸 깨달았을때는 이미 집에서 너무 멀리 온 후였다. 그의 내면의 모든걸 관통하는것이 사랑임을 알았을때는 세상의 끝에 도달한 후였다. 엄마의 죽음 이후로 크지 못한 그의 내면은 단숨에 자라며 성장통을 겪는다. 자신을 아싸아류와 싸패로 분류하고 세상과 동떨어져 세상이 날 따돌리는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따돌린다고 자부하는건 쉽다. 난 원래 이러니까, 원래부터 미쳤고 어쩔 수 없는거니까. 예컨대 자기 세뇌로 버티던 그의 코어는 알리사를 만나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그는 자유를 얻는다. 물론 그 방법은 타당하지 못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약탈해야만 얻는 자유는 한정적이고 유한하며, 제임스는 본인에게 주어진 환경이 정말 좆같았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상대적으로 알리사에 비하면.) 그러나 개개인의 변화의 방법과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설령 이해의 방법이 정당하지 못하였더라도, 우리가 으레 그 나이정도에 이해하게 되는 우리 자신, 그 본질은 같다고 본다. 제임스의 소년으로써의 삶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알리사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알리사의 캐릭터는 본질적으로 단면적이며 그마저도 이야기의 진행됨으로써 바뀌는 모습이 없다. 우발적, 다혈질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겁이 없는 그녀는 어쩌면 이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주는 길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임스의 캐릭터 디벨롭먼트에 비해 그녀의 비교적 예상 가능한 캐릭터와 행동범위가 아쉽다. 우리는 오히려 스토리가 진행되며 그녀를 알아 간다고 할 수 있겠다. 연출이 제임스의 편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일인칭 (마치 ‘위대한 개츠비'처럼 제 3자의 1인칭처럼) 은 아니기 때문에  둘이 함께 다니지 않아도 우리는 그 둘이 어떻게 지내는 지 알 수 있지만, 알리사의 속은 마냥 애매모호 하기만 하다. ‘내가 알리사의 보호자가 아니라 그녀가 나의 보호자'였다는걸 깨닫거나 경찰에 자신의 살인행위를 자수하려는 등 제임스는 변화된 생각과 모습을 보이지만, 알리사는 정확히 어떤 이유로 다시 제임스를 찾게 되는지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그녀도 자신이 믿고 따라왔던 ‘아빠'라는 우상, 자신의 생각 속 존재하던 환상이 사라지자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를 겪는다. 그것이 그녀의 세상의 끝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임스의 것처럼 중요하고 격동적이진 못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는 즉홍적인 결단을 내린다. 이런 점이 그녀의 매력을 반감시키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는 알리사 같은 캐릭터들을 자주 보지 못하니까. 그녀는 나름대로의 해방을 찾아 떠났고, 제임스가 못미더울지라도 어쨌든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만약 시즌 투가 나온다면, 알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줬으면 한다. 제임스가 없는 그녀는 어떤지. 엄마를 용서했는지. 이제 어떻게 살아갈것인지. (물론 제임스 얘기도 궁금하지만.) 


세상의 끝:

     이 쇼의 한국어 제목은 ‘빌어먹을 세상따위'이다. 좋은 시도였지만 원작을 따라가지 못하는 의역이라고 생각한다. 영제목 ‘The End of The Fxxing World’ 에서 중요한 부분은 ‘f-ing world’ 가 아니다. ‘The End’ 다. 위 두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시 언급했지만, 이 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둘의 세계가 안과 바깥으로 허물어지고 합쳐지고 끝이 나는것에 정점이 있다. 제임스에게는 법적으로 18살이 되면 성인이기 때문에, 또 제임스의 한 시절이, 유년기의 트라우마와 감정이 없는 시간이 끝이 나고 비로소 자유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끝이 된다. 알리사에게는 자신이 같혀있던 세계를 어쩔수 없이 타파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끝을 마주하기 때문에 끝이 된다. 둘은 바닷가에 앉아 해돋이를 보며 마치 이곳이 세상의 끝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게는 정말 그곳이 끝이기 때문이다. 알리사는 더이상 갈 곳이 없고, 제임스는 이제 성인이 되며, 바다는 그들에게는 벽과 마찬가지 이다. 이제 어디로? 라는 그들의 물음에 작가는 대답한다. 끝을 마주했다면 이제 돌아가 모든걸 마주하는 수 밖에 없다고.



우리를 속이는 방법들:

     사실 두 틴에이져들이 사랑에 빠진척 자신들이 같힌 불편한 세상을 떠나 약탈과 범죄를 일삼으며 수많은 피해를 일으키고 각종 문제의 주범이 되는 모습이 마냥 즐겁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연출의 목표는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그들이 잘하는건 없지만 그래도 용서할 수 있을 것 처럼. 예컨데 남의 집에 맘대로 들어와 맘대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라던가, 주유소를 털고 영국의 컨트리 사이드를 달리며 키스를 하는 장면같은 것들이 그렇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겠지만 그들의 이상한 관계를 더 즐길수 있도록 하는게 있다면 음악과 비주얼이라고 생각한다. 이 쇼에는 이상하리만큼 ‘요즘노래' 하나가 나오지 않는다. 특히 메인 음악으로 Bernadette Carroll의 Laughing On The Outside를 쓴 것을 보면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그들의 내면과 처음 서로를 대했을때의 간극을 표현하는데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들의 21세기 소년소녀 비주얼과 쇼의 텀블러틱한 색감은 이 둘을 보다 아름답게 그리는데 큰 일조를 했다고 본다.


엔딩:

     엔딩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는 오픈엔딩이며 또 이보다 더 답답하게 끝날 수 없다. 해피도, 배드도 아닌 미적지근 엔딩이다. 개인적으로 오픈 엔딩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굳이 이 쇼에 이런 엔딩을? 하고 생각하기는 했다. 이정도로 artsy한 느낌을 주고싶었나? 그것도 끝까지 무언가 해결될것처럼 굴어서 더욱 황당 했다. 테리와 유니스같은 좋은 캐릭터들을 없잖아 그들의 이야기속 일회용으로 사용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고 싶은 모습이 만약 희망도, 안주도 아닌 날것의 틴 스피릿이었다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제임스의 변화를 잘 보여주기도 했고, 이미 끝이 난 세계를 어떻게든 조금만 더 붙잡고 있으려는 그 둘의 모습이 안타까우며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곱씹을수록 영화와 닮은 드라마다.



그래서 왜 좋냐:

      솔직히 나도 이게 어쩌다 이렇게 히트를 쳤는지 모르겠다. 타겟층이 십대 초중반이었다면 고어나 폭력이 과하게 설계되지 않았는가 싶고, 십대 후반-이십대 초중반이었다면 공감될만한 부분이 조금 덜 하지 않았나 싶어서. 아마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부분이 크게 도움을 준 것 같다. 의외로 넷플릭스에 틴에이져들을 공략한 쇼가 많이 없기도 하고. 그러나 이런 외부적인 이유들을 제쳐놓고 생각한다면 결국 이 쇼의 본질에 대해 생각 하게 된다. 둘은 그 어떤 커밍 오브 에이지 주인공들처럼, 별 관계없이 서로를 만나 결국 사랑에 빠지고 무언가를 배운다. 그러나 이 쇼의 전개 방법이 그 어떤 커밍 오브 에이지 같지는 않다. 제임스와 알리사를 중심으로 하되 그 주변 궤도의 모든 것을 그린다. 그들을 쫓는 경찰과, 부모님과 또 그들을 둘러싼 갈등과 고민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 쇼는 판타지가 아니다.  제임스와 알리사는 결국 자신들의 파라다이스를 찾지 못한다. 어쩌피 이 빌어먹을 세상에 그들이 있을만한 파라다이스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에게서 그 비슷한 의미를 찾을 뿐이다. 우리는 판타지에 지쳐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제서야 막, 낙원이란 우리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곳이라는 걸 깨닫는 나이니까. 판타지가 아닌 이 쇼를 왜 틴에이져들이 사랑하게 되냐고 묻는다면, 결국 판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렵다. 청소년기가 충분한 유예기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 본인과의 힘겨루기에 온 정신을 쏟기에 힘들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기전 나라는 사람을 획일화해야한다는 생각에 고민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떠한 집단에 한 부분이 되고싶기도 했다. 이 쇼는 그걸 말한다. 허물에서 벗어나는 시간들을 기록한다. 결국 좋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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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리뷰다운 리뷰를 쓰게 되어 행복하다. 이제 공부하러가야돼 ....

다음에 어떤 쇼를 볼까 추천작 잇음 방명록이나 댓에 남겨주세요 

그리고 혹시 이 쇼 보셧다면 본인은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얘기하는거 좋아하니까~~~~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