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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아직도 이 블로그에 온다는 생각을 하면 인터넷이란 정말 지울 수 없는 얼룩들의 모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공개로 해놓은건 나지만... 그리고 읽는 대상이 있다는 가정하에 쓰는 글을 아무래도 일기와 굉장히 다르게 쓰여진다. 좋은 연습이라고 받아들인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 이렇게 오면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망설여진다. 이 블로그의 나는 아직 1학년이구나... 이 블로그의 나는 아직 @를 듣거나 @를 사랑하고 @와 친구이구나... 하며 새삼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갈무리되지 못했던 수많은 말들과 온점의 남발을 보면 어떻게든 커가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걸 느껴도 여전히 현실은 속도감이 나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도 창밖의 풍경은 시시하게 느린 것처럼.

 

나는 일을 시작했다. 이 나이 먹고도 제대로 페이체크 받아가며 해본 일이 처음이라는게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어쩌다보니 전공과 관련된 일을 첫 알바삼아 시작했다는 것도 놀랍다. 물론 그 전에는 일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일을 한다는 것은 프로페셔널의 세계에 문득 떨어지는 것이지만 다행이도 내게 주어진 일은 학교에서 마련해준 자리이다.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어렸을때 키자니아에서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자를 만들거나 이마트 직원이 되거나 했던것처럼 그저 교수님 뒷꽁무니에 찰싹 붙어서 겨우 헤엄치는 아기 오리가 된 기분이다. 물론 다행이다. 나는 아직 아무런 노련함도, 세상에 대한 이해도 없기에 정말 필요한 자리인것이다.

 

속해있는 랩실은 내가 아직 배우지 않은 무기화학 기반 랩실이다. 내가 굳이 골라 간것이다. 전공필수로 무기화학은 듣지 않아도 되니까 경험삼아 가봤다. 생화학 전공이라고 일단 결정했기는 하지만 (이건 결정을 잘 하지 못하는 내가 하는 특단의 조치이다. 일단 결정 하고 보기.) 화학으로 전과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교수님이 좋아서 갔다. 특히 나에겐 누가 날 이끌어주는지, 어떤 스타일의 선생님이고 사람인지가 정말 중요한 걸 알기에 잘 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학 교수님이어서 그런지 배움에 대해 친절하진 않다. 내가 만난 모든 교수중 단 한분을 뺴고는 모두 배움에 대해 친절하지 않았다. 모두 필요한 인포메이션을 전파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문제라고 하더라도 교수들을 탓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교수들은 어쩌다 가르치게 된 것이지 가르치려고 온게 아니니까... 머리론 알면서도 아직도 상처 받는 사회적 아기 상태이다. 

 

누구던 어릴적 한시빨리 어른이 되고싶다고 생각한적이 있을테다. 커서는 어른이라는건 얼마나 애매모호하고 대충 만든 울타리인지 꺠닫게 된다. 영어 표현중에 Fake it till you make it 이라는 말이 있는데, 될때까지 살아남아라. 뭐 이런식으로 번역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게 어른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땐 어느새 한 뼘 키가 자라있었다면 스물 이후로는 한 뼘 대처기술과 잡생각, 잡지식이 늘어나고 그것으로 어떻게던 연명해서 나아간다. 연명. 어른은 연명하는 것이다. 한 뼘 씩 연명하며 나아가다보면 반 뼘 정도 더 감당항 수 있게 된다. 어떤 방식의 감당이던간에. 

 

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굳이 하던 와중 바깥 창가에 아주 큰 벌이 앉아 소란을 피웠다. 집에 있을 무렵 벌이 집에 들어온적이 있는데 엄마와 아빠 모두 입을모아 벌은 꼭 살려줘야 한다고 했던게 떠오른다. 방충망 바깥인걸 알지만 그래도 두렵다. 저렇게 큰 벌이 방에 들어온다면 일단 방을 나서서 심호흡을 하고 긴팔 옷을 챙겨입고 끝장내자는 마음가짐도 챙겨야 한다. 이것도 어른의 일이겠지? 겨우 기숙사에 혼자 사는건데도 무서운 일들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가을에 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가 오면 이제 정말 꽤 혼자가 될것이다. 나는 혼자가 즐거운 사람이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고싶을것 같다. 지금도 엄마가 보고싶고 고등학교 친구가 보고싶다. 하지만 또 알게될 나 자신과 혹시 모를 좋은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한국에서는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좋은 커피를 마셔보고 더 많은 작은 일들을 해야한다. 그 시간은 지난다면 정말 다시 오지 않을꺼란 확신이 있다. 

 

누누히 크고싶고, 더 어른스럽지 못해 안달이고, 세계에 대한 이상한 책임감에 시달리는 나를 보며 나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언제나 부족하다는 마음이 나를 좀먹지않고 더 큰 길가로 내새울수 있도록 방향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런 나와 참 다른거 같은 사람을 동경의 마음가짐으로 좋아하면서도 요즘은 마음의 무게가 맞는 이들이 있단 생각도 한다. 타인의 각진 부분들까지 사랑할수 없는 요즘인데 그건 나의 모남을 직면하며 시달린 결과겠지. 다시 가득찬 마음으로 사랑할 날을 기다린다. 그건 아주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